● 도 서 :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 저 자 : 박혜란
● 출판사: 나무를 심는 사람들
여성학자이자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더 잘 알려진 박혜란님의 저서입니다. 세 아들이 모두 서울대에 합격하자 그 어머니의 육아 노하우가 이슈가 되어 출판 제의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책에는 '우리 아이 명문대 보내기' 같은 노하우는 담기지도,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다는 고백입니다.
책에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들과 저자의 육아 철학(?)이 몇 장의 흑백 사진과 함께 실려 있습니다. 무던하고 무딘 성격의 부모가 순둥이 세 아이들을 만나 조금쯤 덜 극성스럽게 아이들을 길러냈더니 아이들은 제 스스로의 힘으로 제가 갈 방향을 잡고 바르게 자라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요즘 세상에 아이들이 제 스스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자신이 갈 방향을 정할 때까지 그저 믿고 지지해 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를요. 치맛바람 극성스런 부모는 되지 않겠다, 다짐했던 사람들도... 저 역시도 막상 자신의 아이가 세상과 호흡을 통하는 순간부터 자식 일에 평정심을 갖고 거리두기를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아직 자고 먹고 배설하는 일이 대부분인, 어린 아기 앵두를 두고도 또래의 아기들과 성장 발달 현황을 비교하며 혹시 성장이 느리거나 아픈 걸 알아채지 못하는 건 아닐까 불안해하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괜찮다, 오바하지 말자 스스로를 다독이곤 하는데요...
저자는 말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빛깔을 갖고 태어나기에 특별한 존재라고. 부모들이 할 일이란 그저 아이들이 갖고 태어난 그 빛깔을 더욱 곱고 선명하게 살려 내는 것 뿐, 마음대로 칠하기엔 아이들은 너무 귀하고 소중한 보물들이라고 말입니다.
아이의 작은 결정 하나부터 인생 계획에 이르기까지 부모가 정한 잣대로 부모가 대신 나서서 재단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렇게 청소년기나 성인기를 맞은 아이들은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부모의 아바타가 되어 살아갑니다. 조그만 시련이 와도 휘청이며 스스로 대면해서 이겨낼 생각을 못하는 건,,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지만 타인의 인생을 마음대로 결정짓기엔 우리는 누구나 완벽하지 않고, 아직도 성장하는 중이며, 좁디 좁은 자신의 경험치를 넓은 세상의 경계인 양 맹신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내 좁은 시야에 갇혀 지내기 보단 아이가 멍들고 무릎에서 피가 흐르더라도 스스로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는 법을 깨닫길 희망합니다. 단단해진 무릎으로 힘찬 걸음을 걸어 세상과 더 넓게 소통하는 법을 깨닫길 소망합니다.
"엄마가 없으면 라면 한 끼도 못 끓여 먹는다거나, 엄마가 올 때까지 고스란히 굶는 아이들 때문에 꼼짝달싹 못한다고 넋두리하는 주부가 있다면, 한번 자신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무능력자로 만든 건 아닐까 자성해 보아야 한다. 옛날처럼 장작불을 때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밀가루 반죽을 밀어서 칼국수를 끓여 먹는 것도 아닌데, 단지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리고 조리법대로만 하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라면을 못 끓이는 건 결코 자랑이 아니다."
아이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할 때 꼭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사랑이 올바른 방향을 향하는지, 사랑이 사랑하는 대상자를 옭아매거나 제한하는 게 아닌 그의 자유를 보장하고 성장을 돕고 편안함과, 위안을 주는 지를요. 자신을 속박하는 사랑을 그 누구인들 고마워하고, 달가워 할까요? 햇빛과 물과 거름, 무엇보다 큰 애정을 쏟아 부어도 자신의 생각과 달리 자라나는 가지를 마음대로 잘라내고, 자신이 정한 모양대로 자라도록 철사로 칭칭 휘감겨 있는 분재 나무는 절대 행복할 리 없을 테니까요.
저자는 또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 뒤에 숨은 소유욕과 명예욕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엄마'라는 직책에 지나치게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거나, 자신을 희생한 만큼 아이가 성장한다는 그릇된 믿음으로 육아에 자신을 몽땅 소진한 후에 찾아오는 공허를 말이지요. 공허함을 자식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기대 심리야말로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독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결혼과 육아는 여성의 삶에 막대한 변화를 요구합니다. 제도 개선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경우는 개인과 가정의 힘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직장과 사회적 현실에 맞닥들여 고민과 번뇌의 무한 반복이지요.. 그렇다한들,, 어쩔 수 없으니...라는 체념으로 그 변화를 수용하기 보다는 저자의 말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자기 자신도 키워나가는 계기로 삼는것이 보다 현명한 처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부모가 자라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그보다 훨씬 훌륭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아직 아기니까 모든 걸 대신 결정해 주는 대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독립적 존재로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지지하는 것이 박혜란식 육아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모랍시고 본을 보이지는 못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훈수만 두는 것보다 겉으로 무심한 듯 보이지만 진심으로 아이를 믿어주고 기회를 주는 것, 그 소신이 부럽고도 본받고 싶습니다. 내 안에 꿈틀대는 괜한 걱정과 극성스러움을 잘 내려놓을 수 있을지... 어렵고도 어려운 숙제가 남았지만 말이지요...
부모의 자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부모가 할 일이란 아이가 방향도 보지 못하게 앞장 서서 걷는 것이 아니라, 조바심을 버리고 조금쯤 느슨한 거리를 두고 아이의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가 넘어지거나 힘에 부칠 때 혼자 힘으로 일어서지 못해 손을 내민다면 딱 그 손 끝이 닿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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